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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에 대한 광범위한 이야기들이 엮여있는 책.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이 허투루 채워져있지 않고,
달콤하고 단단한 과육으로 속이 꽉 찬 튼실한 과실처럼
알찬 이야기로 가득하다.
총 12개의 쳅터를 통해서
저자는
자폐를 둘러싸고 있는 형형색색의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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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업적과 "특이한" 성격으로
근대 문명사/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의 위인들을
자폐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되고,
뒤이어,
자폐에 대한 연구의 역사가 펼쳐진다.
누가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겪어가면서
자폐라는 현상을 인식하고, 진단하고, 연구했는지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미국의 Kanner, 유럽의 Asperger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많은 연구가들이 거론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족히 만들어지겠다.
자폐라는 것인 '발견'되고, 분석되고 대응되는 긴 과정은 결국
자폐가 하나의 병 혹은 증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범위의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즉, 자폐라는 명칭이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쉽게 정형화 하여 생각하는 "자폐의 이미지" 보다
훨씬 더 넓은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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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뛰어난 글솜씨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부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의학사/연구사 부분에서 조차도,
글쓴이는 적절한 긴장감과 재미를
딱 적절하다 싶은 수준으로 잘 버무려서
글을 끌고 간다.
재료의 품질도 뛰어나고,
양념의 비율과 배합도 굉장한데,
인테리어와 플레이팅도 감성 충만한 식당 같다고나 할까.
읽는 이의 시선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당겼다가 풀어줬다가 하는 수준이
굉장한 능숙도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읽는 재미가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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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계속되는 부분은
자폐의 과학/의학적 측면을 넘어서서, 사회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자폐 연구의 역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반면, 이 책이 진심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환자의 가족들과 환자 본인이 사회 속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좌절과 편견에 대한 것일 터.
환자의 부모들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그런 네트워크들이 실질적인 삶 속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어떤 영웅적인 활동을 이어왔는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를 통해서
서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구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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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뇌신경학적 다양성"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과 사회의 시스템이
"자폐 스펙트럼"을 "병"이나 "질환"이 아니라,
다양성의 측면에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있고,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이,
우리의 "뇌신경학적 세팅" 또한 매우 넓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처럼,
왼손 잡이를 질환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다양한 성적 취향과 정체성을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규정하여 치료하려 들지 않듯이
자폐적 성향의 뇌신경학적 세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러한 특성이 그 자체로
다양성의 측면에서 인정받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겠다.
어떻게 자폐를 고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폐적 성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회의 일원으로 생산적으로 기능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를
우리 모두가 고민하면서 풀어가야 하겠다는 방향이다.
특히, 교육 제도와 고용/복지의 영역에서 이러한 인식과 시스템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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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레인맨의 열풍과 그로 인한 대대적인 인식의 향상
그리고 그 이후에 전 세계가 목격한 폭발적인 자폐의 "증가(?)"는
결국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자폐라는 것을 둘러싼 가장 열띤 논쟁은
긍정적이지 않은 부분으로 흘러가게 된다.
자폐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가
엉뚱하게 도착한 지점은
불행하게도 "백신"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잘못된 가설.
그리고, 그 결과로
서구 사회에서 대대적인 "백신 거부 운동"이 벌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눈여겨 보게 된다.
저자는 이런 소모적 논쟁의 방향성이
결국
자폐를 안고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그 "기회비용"으로 삼았다고 안타까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