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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상당히 빈번히 그 이름을 접하게 되는
유명 저자이지만
Fukuyama의 책을 읽는건 꽤나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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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자본가의 편을 들어주면서
비지니스 친화적으로 움직이려는 우파와
계급적 사고로 무장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시장의 논리와 자유를 추앙하는 우파와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평등과 기회의 균등을 지향하는 좌파.
이런 뚜렷한 이분법적 구분이 부드럽게 통용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유용한 틀로서 작동한
20세기를 뒤로한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좌-우의 구분이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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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저소득 층의 임금 보전을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농민과 특정 지역을 위한 강력한 정부의 보조금을 지지하면서
저소득 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우파" 정당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제 미국이나 유럽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 되었고,
더 이상 계급적 사고에 서있지 않고,
기업과 중산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어내려는
"좌파"정당의 모습도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닌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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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계급적 사고 그리고 전통적 좌-우의 구분법이 아닌
다른 개념과 술어를 통해서
우리는 작금의 정치 지형을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현재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정치적인 대격변"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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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체성"과 "인정"과 "분노"라는 키워드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전달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있는
[θυμός]라는 개념은
그리 길지 않은 설명 만으로도 굉장한 인싸이트를 강력하게 던져주고 있다.
우리가 공동체와 사회를 생각할 때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쉽게 옆으로 밀어놓고 빠뜨리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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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초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점점 더 "이민"과 "다문화"를 언급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이
점점 더 자신의 목소리를 갈등적/대립적으로
높이 내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한국이
민족적 정체성이 선명하게 고정되어 있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사회의 불안정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라 할지라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충돌의 근저에 또라리를 틀고 있는
깊은 불편함과 불만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잘 느껴진다.
다른 나라들이 앞서 경험한 이런 류의 문제들을
우리 사회를 향해서 조금씩 적용해보면서
책을 읽게 되는 재미가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