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에 출판된

콩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책

 

일단, 15년이 흐른 책이라,

지금은 상식이 되어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다소 긴장감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의 이윤 동기에 의해서 

대량으로 재배/가공/소비되는 콩 관련 식품들이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상당히 유익하고 의미있다. 

 

@

오래 전부터 콩을 소비하는 "콩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의 눈에

콩은 아무 죄가 없는 식품이겠지만,

 

대량으로 가공되고 정제되어서,

다양한 식품의 원료와 첨가물로 대량 소비되는

"미국식 시스템" 내에서 발견되는 콩은

우리가 아는 "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

앵글리칸 성직자이자 교수인

이 책의 저자 Paul Bradshaw는 

초기 기독교의 전례사에 집중하고 있다. 

 

@

세례의 발전사와

성찬의 발전사가 이 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아울러, 다양한 종교 기념일들이 자잘하게 다루어진다. 

 

@

저자의 배경을 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매우 논쟁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고,

교회의 전통과 전범을 잘 존중하는 기조에서

약간씩 아케데믹한 논쟁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달리 말하자면, 재미있다기 보다는 지루한 쪽에 더 가까운 책.

 

@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은 부분은

초기 기독교의 집회가 토요일 저녁 중심에서 일요일 오전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었다. 

 

또한, 부활절과 성탄절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설명도 나름 재미난 부분이었다. 

 

 

 

@

농업이 시작되기 전, 수렵-채취 시절부터 시작해서

문명이 성립되어, 고대-중세-근대를 거쳐 

현대의 북미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인간의 "결혼"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하는 책.

 

@

물론, 저자가 역점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1800년대 초에서 2000년에 이르는 대략 200년의 기간이다. 

 

"사랑"과 "개인의 선택"이 점점 힘을 얻어

결혼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가는

150여년간의 과정을 잘 설명해주며,

 

그 결과로 탄생한

"생계를 담당하는 아빠와 살림을 꾸리는 엄마" 중심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핵가족'이

약 50여년 간의 기간 동안에

어떻게 해체의 수순을 밟아가는지를

또한 잘 설명해준다. 

 

@

저자는 이를 일컬어 "결혼의 역설"이라고 명명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결혼을 통한 만족과 행복의 추구가

점점 그 성취 확률을 높여가는 와중에,

결혼이라는 제도의 지속성과 연속성 또한

그에 반비례하여 계속 낮아지는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

20년대의 레디컬한 페미니즘과 사회의 변화

대공황과 두 세계대전이 만들어 놓은 "전혀 다른 세상"

그리고 50년대의 거대한 부흥기와 60년대의 히피 문화 등은

현대 사회의 "결혼과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중요한 배경적 맥락을 제공하고 있다. 

 

@

"결혼"제도의 변화를 서술하는 책이니만큼,

사랑, 성, 가족제도, 신분제, 사회의 물적 생산 기반, 종교,

경제, 교육, 음주, 춤/노래, 상업시설, 육아 등등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들이 두루두루 다루어진다. 

@

사회의 무종교화 혹은 세속화를 깊숙하게 연구하고 있는 

유대계 미국인 교수 Phil Zuckerman의 책.

 

제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진 세속사회를 다루고 있다. 

특히, 북유럽의 덴마크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필자가 가족과 함께 직접 살면서 느낀 바와

그 기간 동안 나눈 현지인들과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기반으로해서

책을 끌고 간다. 

 

인터뷰가 거의 그대로 글로 옮겨져 있는지라,

구어체적인 글들이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읽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덴마크/스웨덴 인들의 탈종교적 정서를 생생히 보여주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

덴마크와 스웨덴의 대척점에 있는 나라는 "종교성이 풍부한 미국"이다. 

두 사회의 대조는 "종교적인 국가"와 "비종교적인 국가"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느끼게 해준다. 

 

미국의 많은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달리,

깊은 종교성은 그 사회의 모럴 수준을 담보해주지도 않고,

해당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북유럽과 미국은 대조는

사실, 종교성이 사회의 문제점을 증명해주며,

사회의 미성숙과 불안정성의 방증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터.

 

생활과 정치 및 사회 시스템의 곳곳에 기독교가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미국은

덴마크와 스웨덴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없이 이상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곳일 뿐이다. 

 

@

저자는 "비종교성"이 확산된 문화가 왜/어떻게 탄생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양한 답을 제시한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 시장"의 상황을 결부시켜서

북유럽의 선진국들에서 기독교의 색채가 어떻게 탈색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

비종교적 사회를 다루면서

혹시 중국/일본이 등장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동아시아는 결국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과는 달리

북유럽의 예를 제외하고 등장한 또 하나의 예는

유대인들이었다. 

 

극소수의 보수주의 유대교 종파를 제외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비종교/탈종교"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

루터의 전통이 강력한 북유럽과

랍비닉 유대교의 진보적 색채를 이어받은 유대교가

"탈종교"의 흐름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하겠다. 

 @

교회가 점점 그 역할과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그 원인은 무엇이며,

교회는 그 거대한 현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

 

@

아카데믹한 글을 기대하면, 만족을 줄 수 없는 책이다.

사회학적인 술어와 개념들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목회자에 의해서 쓰여진 책답게,

"교회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

저자는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나 교회학자들과 일치되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를

조직/권위/진리의 존재가 의문의 대상이 되고

개인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최상의 가치가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주술과 토착신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는 환경을

"제1문화"라고 지칭하고,

기독교의 유일신 체계와 교회의 영향력에 근거해 있는 환경을 "제2문화"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탈권위/탈조직"의 개인주의 환경을 "제3문화"라고 명명한다. 

 

지금까지의 선교의 패러다임은 "제2문화"가 "제1문화"를 점령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승리"에만 적응되어 있는 교회는

"제3문화"가 "제2문화"를 압도하며,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퇴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

이러한 교회의 패배와 수축의 와중에

교회가 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하여,

다시 한 번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에 집중하여,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제도로서의 교회가 그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부흥과 재생을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대안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고,

꽤나 깊은 고민의 결과가 다양한 논리를 통해서 설명된다. 

하지만, 그의 대안은 "정석"에 집중한다. 

 

말하자면,

지극히 "원론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원론적인 대답이 아닌 "신박하고 근사한 대안"이 제시된다면,

그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겠는가?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베네딕토 수도원 운동, 이그나티우스, 칼뱅의 삶을 통해

그는 교회가 어떻게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회복될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

아쉬운 점!

 

책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논리중 하나가

현대 사회의 탈권위/개인주의적 성향과 만족의 추구, 반제도적 취향을 

"영지주의"와 연결짓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병폐"를 "영지주의의 현대판"이라고 그는 지속적으로 설명한다. 

 

파편화되고, 개인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극단적인 자기 중심주의가

"영지주의"와 동치로 파악될 수 있다는 등식은

이 책의 근저에 깔려있는

매우 중요한 지반이 되고 있다. 

 

아카데믹한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라는 술어를 이런식으로 사용하는 저자의 논지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프로파간다적인 힘을 위해서야 이런 식의 용법이 강력할 수 있겠으나,

과연 현대 사회를 "영지주의적"이라고 풀어내는 그의 어프로치가

과연 교회의 회복과 부흥에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담백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높은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란 인상이 강하다. 

@

탁월한 스포츠 선수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월드 클라스, 올림픽 클라스의 선수들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까?

 

@

훈련의 중요성, 

성실과 꾸준한 태도의 중요성과 같은

당연한 요소들은

당연히 이 책이 주목하지 않는다. 

 

@

저자가 공을 들여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유전자 차원의 탁월성,

그리고 선수가 성장하고 훈련하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

흥미로운 부분은

cm 단위로 경쟁을 하고

초 단위로 순위를 다투고

gram 단위로 승패가 결정되는 종목에서

어린 나이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조기 교육"이

어떻게 선수를 망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단거리 스프린트와 장거리 육상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성과 

자메이카와 케냐처럼 일류 선수들을 대량으로 배출해 내는

민족집단이 가지고 있는 자연 환경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다. 

 

@

저자는 애써 반대를 말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결국 개인의 성패의 많은 부분은

"노력"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서 크게 결정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밤"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써보겠다는 기세로 쓰여진 책.

 

@

넓게 보자면, 인류의 역사 전체를 훑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특히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시대적으로는 중세 후기에서 근대를 거쳐 현대가 열리는 시점까지,

공간적으로는 서유럽과 북아메리카다. 

 

@

사람들이 밤에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공포, 걱정들이 잘 설명되어 있고,

그와 관련해서 밤에 흔히 일어나곤 했던 

다양한 사건들과 사고들이 제시된다. 

 

평범한 가정에서 "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와

마을과 도시 단위의 공간에서

"밤"의 풍경이 어떠하였는지도 잘 설명되고 있다. 

 

"노동"과 "성"과 관련해서 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와

그러한 밤의 속성이 계층별로 어떻게 체감되고 향유되었는지도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된다. 

 

근대의 유럽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흥미롭게 엮어놓았다. 

 

@

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총에 대한 집착이나,

유럽이 가지고 있는 도시 문화에 대한 통찰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서구 문화 전반에 대한 시각이 넓어짐을 체감할 수 있다. 

 

또한, 중세와 근대의 기독교 교회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제공되고 있다.

 

@

bundling이라는 풍습에 대한 설명이 꽤나 이목을 끌었고,

"조명"의 설치와 보급이 만들어낸 전혀 다른 세상이 재미있었고,

밤과 관련된 다양한 주술적 의례들이 관심을 집중시켰다. 

 

@

저자가 주장하는 "분할 수면"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인공적인 조명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인류는

상당히 긴 "밤"을 부여받았으며,

현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수면 패턴을 유지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현대인들과 같이 잠자리에 누운지 10~20분 안에 수면에 돌입한 것이 아니라,

2시간 정도를 침상에서 느긋하게 누워서 보내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천천히 수면 상태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그 "수면"은 중간에 한 번 일어나는 세션과 함께

보통 두 덩어리의 수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덩어리"의 잠이 아니라,

중간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것으로 분할되는 두 덩어리의 잠을

유지했다는 것.

@

상처, 분노, 우울, 집착, 공포, 강박...

 

이런 복합적이고도 강력한 마음의 상처를 

평생동안 남겨놓은

기숙사 학교에서의 폭력의 경험.

 

@

그 가해자를 찾아나서고 추적하는

저자의 이야기.

 

평범한 책이라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름과 지명은

 개인 정보를 위해서 바뀌어져 있습니다."

라는 식의 설명이 책의 첫 장에 붙어 있겠지만,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This is a work of nonfiction.

No names have been changed.

 

 

@

손에서 책을 떼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놀라운 필력은 무엇!

 

몰입감도 엄청나고,

"집착증"에 가까운 작가의 자료 수집과 추적도 굉장한데,

 

더욱 더 굉장한 것은

성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긴접화법으로 묘사해내는 뛰어난 능력이다.

다양한 플롯을 복잡하게 엮지만, 그 엮인 플롯이 결국 웅변적으로 강력한 메세지를 힘차게 전달한다.

 

 

@

새로운 장르.

이 책을 어떤 장르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회고록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탐정소설도 아니고, 성장소설도 아니고,

르뽀따쥬도 아니고, 싸이코드라마도 아니고,

법정물도 범죄물도 아니다. 

 

모든 것이 엄청난 서스펜스로 엮여 있다. 

 

아동문학 전문가가 이런 글을!!!

 

 

@

표지를 보고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때의 문제점은 

가끔 이런 지뢰를 밟는다는 것.

 

@

표지를 보면서

불교 초기의 사상사적 진화 과정을 요약해 놓은

학술서라 생각했는데,

막상 펼쳐서 읽어보니 전혀 아니올시다...

 

일반적인 신앙서적이고,

게다가 대중법문을 활자화 시켜놓은 것이라,

굳이 책으로 사서 읽은 필요는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래도,

불교의 발생 배경과 착근과정

그리고 인도에서의 소멸과정에 대한 관심은

왕성하게 있느니,

계속 책을 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 Recent posts